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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
1. 답장
너무 늦어버려서 미안
나 알다시피 좀 많이 느려서
몇 번이나 읽어도
난 믿어지지 않았나 봐
답을 알 수 없던 질문들
다음 날에 많이 웃겨줘야지
난 그랬어
지금 생각해보면 그때
넌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
널 알아주지 못하고
더 실없이 굴던 내 모습
얼마나 바보 같았을까
내일 맛있는 거 먹자고
혹 영화라도 볼까 말하던 내가
나 그때로
다시 돌아가 네 앞에 선다면
하고 싶은 말 너무나 많지만
그냥 먼저 널 꼭 안아 보면 안될까
잠시만이라도
나 그때로
다시 돌아갈 기회가 된다면
그때보다는 잘할 수 있을까
뭔가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은데
나 아무래도 내일 쓸까 봐 또 미룰래
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
지금 보내더라도 어차피
달라질 건 없다고
넌 이미 모두 잊었다고
읽지도 않을 수 있겠지
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
모른척 했던 시간이 넘 길었어
나 그때로
다시 돌아가 널 볼 수 있대도
어쩌면 나는 그대로일지 몰라
사실 아직도 그 답은 잘 모르겠어
미안하단 말은 안 할래
그렇게 되면 끝나버릴까 봐
그러고 나면 똑같아질까 봐
혹시 내일이면 알게 될 수 있을까
오늘도 미루고 내일도 미루겠지만
널 사랑해
이것만으론 안 될지 몰라도
이제 와서 다 소용없더라도
이것밖에 난 하고픈 말이 없는데
사랑해 너를
2. Moonlight
곤히 잠이 든 그댈 바라봐요
무슨 꿈 꾸고 있나요
베시시 웃다가 또 찡그리네요
어제도 그러더니
나는 이렇게 매일 밤 찾아와
그대의 곁을 지키죠
오늘은 다른 노랠 불러 봤어요
혹시나 방금 웃었나요
고요한 밤에 그대의 얼굴은
한낮의 슬픈 얼굴과는 달리
한결 편해 보이네요 맘이 놓여요
이제 곧 아침이 밝아 오려 해요
오늘은 슬퍼하지 마요
당신이 해를 만나는 동안 난 무엇도 할 수가 없답니다
그래서 미안해요
어제 그대가 홀로 눈물 흘릴 때
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내가
얼마나 애태웠는지 알 수 없겠죠
오늘은 하늘이 맑을 것 같아요
두 눈은 왜 또 젖었나요
그러면 이 노래는 어때요
별빛과 함께 두고 갈게요
그대여 푹 잘 자요
3. 사랑한다 말해도
난 네 앞에 서 있어
너는 생각에 또 잠겨 있네
함께 있어 더 외로운 나
어쩌다 이렇게
난 네 앞에 서 있어
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채
떠올면 또 부서지는
수없이 많은 말
나를 사랑한다 말해도
그 눈빛이 머무는 그곳은
난 헤아릴 수 없이 먼데
너를 사랑한다 말해도
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두 눈이
말라버린 그 입술이
나를 사랑한다 말해도
금세 침묵으로 흩어지고
네 눈을 바라볼 수 없어
너를 사랑한다 말하던
그 뜨거웠던 마음이 그리워져
그 설렘이 그 떨림이
어쩌면 우린 이미 우린 알고 있나요
그래야만 하는 가요
난 네 앞에 서 있어
너는 생각에 또 잠겨 있네
함께 있어 더 외로운 나
어쩌다 이렇게
4. 연극
똑똑 울리는 노크
문을 연 순간 얼어벼렸다
눈부신 네가 들어선 순간
금빛으로 세상은 물들었다
빙글 하늘이 돌고
간신히 나는 서 있었다
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
그대로 돌처럼 난 굳었다
그런 날 옆에 두고
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
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
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
시간이 영영 멎어버린 걸까
혹시 꿈을 꾸고 있을까
철썩 내 뺨이라도
내밀어 볼까 하던 찰나에
방긋 웃으며 나를 녹이네
쥐락펴락 난 벌떡 일어나서
한참 떠들어대고
네 손끝에서 춤을 추고
너의 웃음에 행복해하는
사랑의 삐에로가 되었다
나의 몸짓에 까르르 웃는
널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
벌써 해는 저물고
발그레한 네 얼굴 바라보다
노을빛일까 알 수 없어서
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
이윽고 너는 자릴 떠나고
나는 붙잡을 수가 없다
잠시 돌아서 날 바라보는 눈빛
그냥 숨이 막혀버렸다
번쩍 정신이 들어
뛰쳐나가서 널 불러 봐도
어느새 너는 흔적도 없고
텅 빈 무대에 나 홀로 서 있다
털썩 주저앉은 나
누군가 내게 말을 건넨다
이봐요 당신 이미 오래전
연극은 벌써 끝이 났다오
5. Contact
널 첨으로 스친 순간
절로 모든 시간이 멈췄고
서로 다른 궤도에서 돌던
이름 모를 별이
수억만 년 만에 만나는 순간
내 몸이 가벼워져
두 발 끝은 어느새 떠오르고
끝도 없는 어둠 속 소리도 없는
그곳에서 다시 깨어나
나를 더듬는 손길 그 하나만으로
살아 있다는 걸 난 알 수 있었지
춤추듯이 떠다니는
우릴 달의 뒷면이 비추고
이대로 다 끝나버렸으면
우리 세상에선
이미 수천 년이 흘렀더라도
난 아무도 아니고
네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고
네가 나를 만지면 그 작은 울림에
쏜살같이 멀리 튕겨서
빛이 다른 공간에
한없이 떠돌다 타버릴지 몰라
널 놓치지 않게 나를 잡아 줘
네가 나를 부르면
난 다시 태어나
너의 무엇으로 읽혀지고
또 다른 네가 되고
우릴 끌어당기는 그 어떤 법칙도
모두 거스른 채 하나가 될 거야
그렇게 우린 사라질 거야